[옛이야기]효녀 심청

[옛이야기]효녀 심청

옛날 어느 마을에 심학규라는 눈먼 사람이 있었어.

모두들 '심 봉사, 심 봉사'하고 불렀지.

심 봉사는 늘그막에 예쁜 딸을 하나 얻었어.

덩실덩실 춤추며 청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지.

하지만 하내는 청이를 낳은 뒤 심하게 앓더니 그만 세상을 떠났어.

"청아, 불쌍한 청아! 눈먼 아비가 널 어찌 키울꼬."

심 봉사는 포대기에 싸인 청이를 안고 목을 놓아 엉엉 울고 또 울었어.

 

심 봉사는 배고파 우는 청이를 들쳐 업고는

이 마을 저 마을 더듬더듬 헤매며 동냥젖을 얻어먹였어.

때마다 음식을 얻어먹고 철마다 헌 옷가지를 받았지만

한치 앞도 못 보는 몸으로 어린 딸을 키우느라 몹시 힘겨웠어.

 

청이는 착하고 참하게 자라났어.

열다섯 살이 되자 늙은 심 봉사 대신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갔어.

온종일 남의 밭을 매고 무거운 나뭇짐을 져 나르고,

바늘에 찔려 가며 삯바느질을 해야 했지.

청이는 아무리 고달파도 웃는 낯으로 심 봉사를 잘 모셨어.

얘야, 청아. 못난 아비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이만큼 키워 주셨으니 이제는 제가 아버지를 모셔야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어. “잔칫집 일이 아직도 안 끝났나. 얘가 왜 안 오지?”

심 봉사는 이웃집 개가 컹컹 짖어도 청이가 오나 싶었고

바람결에 사립문이 덜커덕 흔들려도 청이가 오나 싶었어.

기다리고 기다려도 청이는 오지 않았어.

안되겠다, 어디쯤 오나 나가 봐야지.” 심 봉사는 지팡이를 짚어 가며 더듬더듬 걷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개울에 풍덩 빠지고 말았어.

어푸 어푸, 사람 살려!”

마침 지나던 스님 한 분이 난데없는 고함 소리에 놀라 달려왔어.

 

스님은 허우적대는 심 봉사를 건져 주었어.

아이고, 고맙습니다. 스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스님은 심 봉사를 가만히 살피더니 쯧쯧 혀를 찼어.

딱하게도 앞을 못 보는구려. 허나 눈 뜰 방법이 영 없는 것도 아닌데.”

심 봉사는 가슴이 두근거렸어.

정말입니까? 스님, 어찌하면 눈을 뜰 수 있습니까?”

부처님 앞에 쌀 삼백 석을 바치고 열심히 기도 올리시오.

반드시 눈을 뜨게 될 것이오.”

심 봉사는 눈을 뜬다는 말에 쌀 삼백 석을 바치겠노라고 스님께 선뜻 약속하고 말았어.

 

늦게야 돌아온 청이는 서둘러 상을 차렸어.

심 봉사는 밥상을 앞에 두고 한숨만 푸욱 푹 내쉴 뿐이었지.

아버지,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쌀 삼백 석을 바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청이는 밤새 빌고 또 빌었어.

아버지께서 눈을 뜰 수 있다면 이 목숨이라도 바치겠어요.”

 

며칠 뒤, 이상한 소문으로 온 마을이 술렁거렸어.

중국으로 가는 뱃사람들이 제물로 쓸 처녀를 산대요.

인당수를 지날 때마다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열다섯 살 처녀를 바쳐 제사를 지낸대요, 글쎄.”

청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뱃사람들을 찾아갔어.

쌀 삼백 석만 주신다면 제가 기꺼이 제물이 되겠어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고

뱃사람들은 선뜻 쌀 삼백 석을 내주었어.

 

드디어 청이가 떠나는 날이 되었어.

정성껏 차린 밥상을 받고 심 봉사는 입이 떡 벌어졌어.

우리 형편에 고깃국을 다 끓이다니, 오늘이 무슨 날이냐?”

아버지, 부디 용서해 주세요. 쌀 삼백 석을 구하려고 인당수 제물이 되기로 했어요.”

아니, 너 죽고 내가 눈 뜬들 다 무슨 소용이냐.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 안 된다! 절대로 못 간다!”

심 봉사는 울고불고 소리치며 말렸지만,

청이는 마지막으로 큰절을 올리고 뱃사람을 따라 나섰어.

 

드디어 청이를 태운 배가 바다 가운데 인당수에 닿았어.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지더니, 우르릉 쾅! 천둥 번개까지 쳤어.

거센 파도는 배를 뒤집을 듯 철썩이며 솟구쳐 올랐지.

아버지, 꼭 눈을 뜨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뱃머리에 올라선 청이는 배가 소용돌이에 말려들기 전에

바닷속으로 훌쩍 몸을 던졌어.

청이를 삼킨 바다는 거짓말처럼 잔잔해졌어.

 

청이는 캄캄한 물 속으로 하염없이 떨어지다가 눈을 번쩍 떴어.

온갖 보석이 반짝이는 용궁이 눈앞에 나타난 거야.

여기가 어딜까? 나는 죽은 걸까?’

어리둥정해하고 있는데 누군가 청이를 불렀어.

청아, 엄마다! 우리 청이가 이렇게 자랐구나.”

어머니!” 청이는 용궁에서 어머니와 함께 꿈 같은 날들을 보냈어.

아버지는 지금쯤 눈을 뜨셨을까?’

아버지 걱정말고는 하루하루가 행복하기만 했지.

 

청아, 용궁에서 지낸 지도 오래 되었구나.

이제 그만 세상 위로 올라가도록 해라.”

용왕님은 청이를 불러 커다란 연꽃 속에 앉게 했어.

청이가 용왕님과 어머니께 큰절을 올리자,

꽃잎이 스르르 오므라들었어.

커다란 연꽃은 바다 위로 둥둥 떠올랐지.

 

뱃사람들은 바다 위에 커다랗게 빛나는 연꽃을 보고 깜짝 놀랐어.

세상에 희한한 꽃을 다 보겠네. 건져다가 임금님께 바쳐야겠다.”

임금님도 커다란 연꽃이 너무나 신기해서 한참 들여다보았어.

그 때, 꽃잎이 스르르 벌어지더니 청이가 나타났어.

임금님은 꽃에서 나온 청이를 보고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물어 보았어.

청이는 다소곳이 지난 일들을 이야기했지.

오호, 그 마음이 정말 아름답구려.

이 나라의 어머니인 왕비가 되어 주시겠소?”

임금님은 착하고 어여쁜 청이를 왕비로 삼았어.

 

청이는 왕비가 되어 아버지부터 찾았지.

하지만 심 봉사는 눈을 뜨지도 못하고 마을을 떠나 버린 뒤였어.

온 나라 안의 장님이 모인다면 아버지를 뵐 수 있을지도 몰라.’

청이는 아버지를 만날 생각에 나라 안의 장님이라는 장님은 모두 불러 큰 잔치를 벌였어.

잔칫상마다 맛난 음식이 그득그득 차려지고 흥겨운 음악이 울려 퍼졌어.

아버지, 제발 살아만 계세요.’

잔치는 몇 날 며칠 이어졌지만 심 봉사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어.

 

마지막 날, 잔치가 끝날 시간이 다 됐는데도 심 봉사는 보이지 않았어.

그 때, 저만치서 지팡이 짚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노인이 있었지.

누더기 차림에 거지꼴이었지만 청이는 단박에 아버지를 알아보았어.

아버지! 저예요, 청이예요.” “뭐라고, 청이가 살아 있단 말이냐?”

어디 우리 청이 얼굴 한 번 보자꾸나.“ 심 봉사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번쩍 떴어.

그래, 우리 청이, 청이로구나.” 심 봉사는 왕비가 된 청이를 보고 또 보았어.

아버지, 아버지가 눈을 뜨셨어요!”

두 사람은 너무 기뻐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어.

효녀 청이는 눈을 뜬 아버지를 정성껏 모시면서 궁궐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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